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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우리부부가 시골땅에서 살수 있게 해준 은인.

IMF 이후에 거듭된 매출 하락

그리고 그에따른 어려운 경제사정으로

몇 안되는 직원들 마저 모두 내보내고 어렵게 공장 운영하다가

이곳 안성 작은 농촌마을에 자리잡은지 근 10년이 다 돼가네요.

 

아무 연고도 없던 ,

마을과 동 떨어져 인근에 주택마저 없었던 이곳에서 그분을 만났죠.

 

지금은 고인이 되신  김 재기님이 그 분이십니다.

 

경황없는상황에서 이곳 안성에 자리를 잡고

처음 만난 분이기도 합니다.

 

당시 그분의 옥토가 제 집 입구쪽에 자리잡고 있어 자주 뵐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분을 통해 전에 사시던 분들이 마을 분들의 텃세를 견디지 못해 이사를 나갔다는 말도 그때 들었습니다.

 

그런 점을 우려 하셨는지는 모르겠지만

당시 일곱살,세살짜리 아이들을 데리고 농촌으로 들어온 저희들을 어여삐 봐주셨는지 많은 관심을 주시고,

시시때때로 물 한잔 얻어 마시자는 핑게로 오셔서는

저희가 이곳 시골땅에 조금이라도 빨리 자리잡을수 있도록 많은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으셨죠.

 

 제 집 터에  텃밭이 조금 딸려있지만

농사라고는 처가집 고추농사 짓는 모습만 봐왔던 저희 부부에게는 난감할따름이었지요.

 

그때마다 손수 마을 트랙터를 불러 땅을 일구어 주시고 작물에 따른 파종법과 관리하는 방법을 알려 주시며

근 4년여를 가족과 같이 여겨 주셨고, 저희 부부는 물론 아이들에게도 사랑과 애정을 주셨죠,

 

일일히 마을 어르신들도 만나게 해주고 마을분들과의 유대관계 개선에 힘 써 주셨죠..

 

그분의 그런 애정이 지금 이렇게 오늘날까지도 마을분들과 오손도손 정을 나누며 지내고 있는것이지요.

 

밭에 농사지러 나오시면서 챙겨오시는 간식중에는 항상 저희 부부몫도 있었답니다.

항상 마실 물 핑게로 오셔서는 손수 싸가지고오신 간식을 내놓으셨죠.

 

그 분의 도움으로 어느덧 농촌생활에 익숙해지고

이곳 안성을  제 2의 고향으로 생각하고 열심히 생활해보자고 다짐하던 그 때, 4년째 되던해에 

그 분은 갑자기 악화된 지병으로 이 세상을 등지고 말았습니다.

 

정말 순식간의 일이었고 가슴 아픈 일이였지요.

 

우린 그 분께 전혀 해준게 없는데..

이제 겨우 자리잡고 받은 은혜 갚을수 있게 되었는데 말입니다.

 

처음에 약 5년간만 시골생활하고 다시 도시로 나가자고 했던 아내와의 약속을 지키지는 못했지만

10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우리 부부는 이곳 시골 생활에 흡족하고 있답니다.

아마도 이곳을 쉽게 떠나지는 못할것 같습니다.

너무도 정이 들었거든요.

 

그건 바로 김 재기씨 그분이 계셨기에 가능했던 것이지요.

 

혼자되신 아주머님이 시골집을 지키며 홀로 지내시기에 가급적 자주 들여다보려 노력은 하고 있으나

저희가 받은 애정에 비해서는 너무 모자라기만 하네요.

 

지금도 어디선가에서 저희 가족의 행복을 기원해주며 사랑으로 지켜보고 계시리라 믿습니다..

 

긴 시간이 지난 오늘이지만 다시한번  고인이 되신 김 재기님의 명복을 빕니다.

 

아마도 저희 부부에게 있어서 평생 잊지못할 은인으로 가슴 깊이 기억될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