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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처가 or 애처가

아내의 운전교습 이정도는 돼야 애처가지?

다시 생각해보니 아찔하다.그땐 왜 그리도 겁이 없었나 싶다.

 

때는 2002년 한일 월드컵이 열리던 해, 비가 유독 많이 내리던 장마철에

아내는 자동차 운전면허를 취득했다.

2003년 귀촌 하기로 결정이 됐기에 그전에 면허 취득을 해야 했다.

 

일단은 공소시효가 만료 됐기에 이제는 말할수 있다.

 

필기시험전에 도로주행 연습을 준비했다.

 면허증 없이 안전요원이라고는 무허가 남편..

 

 

서해대교가2001년 완공되고 1년이 채 지나기전 여름.

서해대교 인근 공업지역,

 도로공사만 되어있는 황량한 벌판과도 같은 그곳에서 역사는 시작 됐다.

 

가끔 낚시를 다녔기에 그곳 사정을 잘 알고 있었다.

 

차량은 카니발 오토 9인승.

 거제도 여행이 계획되어있어  오후 늦은 시간 군포에서 서해안 고속도로에 차를 얹었고,

잠시 아내의 운전 연습을 돕기위해 서해대교 통과후 공단으로 나갔다.

 

 

악세레타와 브레이크 감각을 익히게 하고 주차장에서의 주차 방법을 속성으로 익힌뒤

우린 다시 고속도로를 달렸다..물론 제가 운전 했겠죠..

 

그렇게 달리고 달려 늦은밤 88고속도로에 들어섰고 오고가는 차들이 거의 없기에

고속도로 한복판에서 아내를 운전석에 앉히고 직진만 하는 운전 연습을 그렇게 시작 했다..

 

우린 죽으면 같이 죽는다는 생각에 다른 걱정은 전혀 없었다.

난 내가 그리 쉽게 죽을수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아내와 주인공이니까.

 

처음 시작은 시속 50km,

 

여전히 차는 거의 2차선 모두를 걸쳐가며 갈 지()자로 달렸고

천천히 간다고 뒤에서 헤드라이트 깜박이는  차량이라도 오면 안절부절 못하는 아내.

겁이 많아서 죽어도 자동차 운전만은 하지 않겠다던 그녀가

어느새 고속도로에서의  제한 속도를 넘나들며 그 짧은 시간에 초보 딱지를 버리고

베스트 드라이버로서의 첫 발을  내 딛었다.

 

 

50km를 달리고 나니 제법 속도도 붙고 웬만한 화물차는 추월할수 있는 정도의 실력으로 늘었다.

지나온 갈 지()자는 순식간에 역사 속으로 파묻혔다.

 

만약에 내가 잔소리로 응대하고 위험한 고비에서 주춤했다면

어쩌면 아내는 운전대를 다시는 잡지않으려 했을지도 모른다.

 

무조건 나만 믿어라 .

내가 옆에 있는데 무슨 걱정이냐?

내가 운전대 잡아주면 되니 걱정 붙들어메고 속도를 좀 더 올려라.... 

 

난 책임 지지도 못할 말들을 내뱉으며

나와 아내의 목숨을 담보로 아내에게 도로 주행 연습을 시킨것이다.

 

그러나 나의 믿음에 모든걸 맡기고 훌륭히 임무를 완수한 아내가 그렇게도 자랑스러울수가 었었다.

 

 일이 있은후 아내는 자동차 운전에 대한 모든 공포를 덜어낼수 있었다

 

지금은 운전하는 내게 이래라,저래라....

네비보다도 더 시끄럽게 잔소리를 해댄다.

 

운전 그따위로 하지 말라며...ㅎㅎ

 

여튼 아내의 훌륭한  운전실력의 기초는 막가파식 운전 교습에서 시작된것임은 확실하다.

공생 공사하는 서로의 믿음이 아내의 운전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떨치는 결과를 가져왔다.

 

목숨과도 바꿀수 있는 믿음이 애처가의 첫번째 덕목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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